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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짓 하는 삶

반석장로교회 0 8407
“날개 짓 하는 삶”                           

    제가 얼마전 이곳을 방문한 손님목사님을 모시고 라호야 비치에 간 적이 있습니다. 바닷 물개들이 방파제 옆에 벌렁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제가 앉은 벤치주변에 먹이를 주는 어느 백인 아줌마 곁으로 수많은 비둘기떼들이 몰려들고 있었읍니다. 바다를 바라보니 갈매기떼들이 특유의 소리를 내면서 날개짓하고 이리 저리 먹이를 찿아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순간 언뜻 그 옛날 읽었던 리차드 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이란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겉으로 보아서는 지극히 평범한 갈매기입니다. 그러나 조나단은 보통 갈매기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평범한 갈매기의 삶을 거부하고 동료갈매기들이 쉴 때에 그들의 눈을 피해 남몰래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아 오르는 비행술을 연마합니다. 나중 이 사실을 알게 된 엄마 갈매기나 주변 동료 갈매기들의 비웃음과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비행연습을 합니다.  조나단은 다른 갈매기들처럼 무의미한 삶을 살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운 그런 훈련을 아니었습니다. 고된 훈련을 이겨내며 갈매기의 역사상 최고 빠른 갈매기가 되었습니다.
   
    조나단이 이렇게 높이 날게 된 것은 그의 높은 이상 때문이었습니다. 갈매기의 인생이 그렇게 짧은 이유는 바로 권태감 혹은 공포심 또한 일상생활에 만족하는 안일함 때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상의 삶에서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됩니다.

    리챠드 바크는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보다 이상세계를 향해 계속 날개 짓하는 인생의 삶을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죠나단 리빙스턴 시걸’을 그의 책속에서 등장시킨 것입니다.  단순히 먹을 것만을 찿아 나는 갈매기의 삶을 거부한 자에게서 높은 이상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날개는 먹이를 찿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날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리챠드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란 소설과 함께 다른 한 책이 생각났습니다. 1930년대에 인간의 내면세계를 깊이 추구하고 심리주의 경향을 보였던 작가 이상의 ‘날개’란 책입니다.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나’라고 하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아내가 가져다 주는 매일 매일의 잔전 몇푼에 인생을 맡기고 그럭 저럭 살아가는 그의 26해 동안의 갇혀있는 삶에서 마침내 어느날  주인공 ‘나’는 비상한 삶으로의 결단을 해야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고백을 하게됩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그는 일상의 삶에서의 탈출을 시도함과 동시에 행복한 이상세계를 꿈꾸는 이상 자신의 의식구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세계에 대해 일찍이 희랍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Idea(이데아)’의 세계라고 표현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Usia(우지아)’의 세계로 표현했습니다. 언어와 개념은 각기 달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참된 인생은 이상세계를 향해 날개 짓하는 삶’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향하여 날개짓 해야하는가? 우리가 날개짓하면 날아가야할 가장 아름다운 이상세계는 어디입니까? 저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성경을 보게됩니다. 구약성경 에스겔서1장과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에스겔이나 요한의 환상중에 날개 짓하는 이 지상의 4생물(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날개 짓은 이 땅에서 먹이를 구하는 날개 짓이 아니었읍니다. 그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날개 짓과 함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거룩하다’ 한번만해도 되는데 두번을 쓸 때에는 가장 거룩함을 뜻하게 되는 반복형 어법인데 여기서는 한번 더 ‘거룩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가장 거룩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의 거룩’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완전한 거룩함이 존재합니까? 보좌 우편에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해 날개 짓하는 자의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상한 고백이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완전한 기쁨, 완전한 평강, 완전한 소망, 완전한 행복, 거룩한 생명이 예수 안에 존재합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거룩하다’라고 하는 찬송입니다.

    먹이를 구하여 날개 짓하는 삶속에서 거룩함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날개 짓에서 거룩함의 찬송이 흘러 나오고 있음을 엿보게 됩니다.  먹이를 찿아 헤매는 날개 짓이 아니라 좀더 하나님을 향하여 영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발버둥 치는 날개 짓이 될 때에 우리의 삶은 나도 모르게 거룩한 자의 삶이 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사랑하는 교포여러분! 비록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삶이 비바람 창수가 몰아쳐도 끊임없이  주님앞에 나와 거룩한 날개 짓을 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마침내 우리는 이전에 맛보지 못한 새로운 하늘의 세계가 열릴것입니다. 더 높이 날수록 우리는 더 아름다운 세계를 볼 수 있윱求?     

                                                  -반석장로교회를 섬기는 최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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