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신앙 코너

광풍 가운데

중앙교회 0 11086
제목:  광풍 가운데
본문:  마가복음 4:35-41
찬양:  주 품에 품으소서

지난 주는 미얀마에 나르기스 싸이클론의 피해로 약 2만 여명 (5/15 발표는 38,491 사상자 + 3만 명을 넘는 실종자 = 10만 명 예상 )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The International Red Cross said in a new estimate that the death toll may already be between 68,833 and 127,990 — considerably higher than the government's latest official count of 38,491 dead, announced Wednesday night on state television. The Red Cross said it made the estimate by adding figures gathered in affected areas by other aid groups and organizations and extrapolating the total.  An estimated 2 million survivors are still in need of emergency aid, but U.N. agencies and other groups have been able to reach only 270,000 people affected by Cyclone Nargis so far.

그리고, 1주일 만인 지난 5월 12일 (월), 중국 쓰촨성에서 강도 7.8의 큰 지진과 1,900 여 차례의 여진이 발생하여 2008년 5월 15일 현재 약 13,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공식 발표를 접하고 있으며, 매몰 및 실종자들까지 8만 여명을 포함하면 거의 1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더 많은 사상자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많은 댐들이 이번 지진과 여진들로 붕괴될 위험을 알리고 있으며 다급하게 대피하고 있는 현장 사진들을 보내옵니다. 오늘 공식집계는 32,477 명이라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곳곳에 태풍, 지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는 HIV 및 ADIS 의 피해로 부족 전체가 사라져 버리는 끔찍한 일들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접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쇠고기 수입관련 촛불집회로 시끄럽고, 서 박사님께서 조류독감에 대하여 설명해 주셔서 심각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처분 현장이 서울까지 확산되는 소식도 들리고 있습니다. 이제 어쩌면 닭고기를 못 먹게 되나 봅니다. 

천재지변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인생의 항로를 열어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메세지를 나누길 원합니다. 

마가복음 4: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날이 저물고 어두울 때 건너야 합니다. 어쩌면 명확하지 않고 어둡고 답답한 시대를 살아가는 즉, 현재 우리가 딛고 있는 싯점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염려가 되고 불안한 것이 사실 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시작을 태양이 저편으로 자취를 감춘 해질 무렵을 시점으로 잡는다고 합니다.[3]  창세기에서도 하나님께서 하루를 계산할 때 이와 같이 하셨습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 등 창세기 1장 5, 8, 13절 등 계속 언급하고 있습니다. 밤은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빛을 사모하고 그 빛이 밝아 올 때 더욱 빛나기 때문 입니다. 

저희 집 아래 집에 중국인 노 부부집 앞에 커다란 오렌지 나무가 있습니다. 그 향기가 밤에 더욱 짙어서 저희 가족들과 저희 집을 방문하신 분들까지 기쁘게 하십니다. 제가 보기에는 향기가 늘 같지는 않겠지만, 낮에는 우리의 오감 가운데 시각에 많이 의지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밤에는 다른 감각기관을 열 수 있게 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다른 것을 발견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쉽지 않은 뱃길이 될 것이 뻔합니다. 당시에 항해 기술로는 밤에 항해 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바클레이의 주석을 살펴보면, 갈릴리 바다는 해면보다 무려 180미터 이상이나 낮은 위치로 고원으로 둘러 싸여 있고 그 너머 저쪽에는 높은 준령들이 솟아 있습니다: [4]

몇 개의 강들이 그 고원 지대를 깊이 침식하여 호수에 이르는 깊은 협곡을 파 놓았다. 이 같은 협곡들이 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찬 바람을 끌어들이는 커다란 깔대기 역할을 하게 되어 앞서 발한 바와 같은 폭풍이 일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앞을 막아서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고 다른 시선으로 그 너머에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이고 힘이 됩니다. 저편은 미지의 세계이고 알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저편 너머에서 제자들은 놀라운 일들을 경험합니다: 

이후 5장에서 많은 귀들린 거라사의 광인을 고치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며, 혈우병 앓은 여인들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6장에서 예수님처럼 제자들도 파송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귀신을 쫓아 내고 병인들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5천명을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8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또 다시 4천명을 먹이시고 소경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호수를 건너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목격했으며, 제자들 역시 귀신을 쫒아 내며 병자들을 고치는 능력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우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임마누엘 즉,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지켜 주셨으며, 이후에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의 댓가를 치려 주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격려하고 계셨으며 늘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함께 하셨습니다.


I. 우리의 인생이 광풍 가운데 놓일 수 있습니다. (vv.35-38a)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

이들은 뱃길에서 만큼은 나름대로들 자신이 있었습니다. 갈릴리 호수 출신들인 베드로, 야보고, 요한, Andrew, 빌립 등은 고깃배를 몰고 물고기를 잡는 어부 출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있는 분야에서는 주님께 의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른 배들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운행하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보다는 세상의 물결과 대세를 따라서 살면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항로에서 주님은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십니까?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배의 한쪽 편에 모셔두고 주무시도록 남겨 두었습니다. 마가복음 4장 앞 장면에서 주님께서는 별 다른 많은 기적과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잠을 청하실 만큼 피곤하실 정도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인생의 항로에서 광풍이 부는 가운데 배에 물이 차 올라오는 것과 같은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 이유는 3가지라고 봅니다.

1)  자신의 경험과 능력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때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주인이고 방향키를 거머쥔 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개입할 여지가 없어집니다. 이때 광풍이 불어 올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목적을 따라 창조하신 피조물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고 그분에게 의지하고 의뢰하길 원하십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하시고 우리와 만나시며 함께 나누기 위해서 입니다.

2)  이 광풍과 같은 어려움을 통하여 주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들은 주님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항로에서 광풍 가운데 그들은 주무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려움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게 됩니다. 우리가 방향키를 잡을 때 주님을 일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폭풍 가운데 제자들의 어려움을 모르고 계셨을리 없습니다. 누구 보다 먼저 이들을 돕길 원하시만 주님은 배 뒷편에 모셔져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이제 의지하게 합니다.

3)  우리의 어려움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드러내고 그 이름을 높이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하셨어!”라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제자들은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능력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 어려움과 고난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는 주님의 은혜이실 수 있습니다.

인생 한 가운데 광풍이 밀어 닥치는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베드로 전서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마치 자녀로 하여금 한 단계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수 없지만 스스로 풀게 하면서 해결하지 못할지라도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하는 선생님의 배려가 있다고 봅니다. 한 단계 더 넘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이기 때문 입니다. 만약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땐 곁에 계신 선생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것을 통하여 문제가 해결되고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교훈하시기 위해서 폭풍 가운데 함께 하시면서 그들이 찾고 깨우기까지 기다리셨는지 모릅니다. 

II. 우리는 광풍 가운데 도우심을 만날 수 있습니다. (vv.38b-41)

38  …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이제야 제자들은 배 고물에 베개를 베시고 주무신 예수님을 깨우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달라”설명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광풍 한가운데 그들 앞에 펼쳐진 상황을 둘러 보시기만 하셔도 문제는 해결된 것 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을 찾으면서 다음과 같은 잘못들을 반복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1)  하나님께서 돌보시지 않았다고 불평을 합니다. 늘 곁에서 지켜 보시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 같이 여기고 그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부모된 우리가 우리의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자녀에 대하여 관심과 사랑을 놓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를 향하여 고개를 돌리시며 시선을 고정하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을 찾아 자신의 자랑을 늘어 놓는지도 모릅니다. 일을 이루시고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보다 자신의 재능과 역할을 더욱 강조하고 있지는 않나요?

3)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고 해결하셔야 할지도 자세하게 설명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실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방법까지도 일러 제시하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예상을 벗어난 놀라운 능력을 품어내시고 계셨습니다. 바다를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셨고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급한 문제점인 배에 물이 들어와 잠시는 현상을 우선적으로 해결하신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인 바람을 잠잠케 하십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자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드러낸 장면이기도 합니다. 

마가복음 4: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누가 바람과 바다를 향하여 명하고 잠잠하게 하실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은 현상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함으로 이것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또 다른 기적들 가운데 하나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도 두려워하고 믿음이 없음을 나무라고 계셨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시는 메세지는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4: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어쩌면, 36절 말씀처럼,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와 같이 다른 이웃과 형제님 자매님들도 우리를 따라서 잘못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뱃머리에 계신 그대로 주무시게 놓아둔 채로 우리의 판단과 생각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다른 배에 탄 많은 사람들에게 비춰지고 그들도 우리와 같이 행동하게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세 또는, 마지막 세대라고 부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늦추고 어두움의 세력을 막아내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신학자들은 다니엘의 70이레를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를 교회시대 또는, 은혜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교회에서도 청년들이 떠나 가고, 더 이상 한국 교회는 우리의 청년들이 의지하고 위로를 얻는 공간이 되어 주지 못하고 있는 가슴 아픈 현상을 사실로 받아 드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유럽이나 오래된 미국 교회의 현상을 그대로 닮아가서 건물만 남아 박물관으로 전시되고 관광객의 입장료 수익으로 돈을 모으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에 교회에 출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우리 교회 청년분들이 그래서 더욱 소중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6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2: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교회는 세상의 불법과 부패에 맞서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방향키를 잡으시고 안전하게 인도하시도록 주님을 깨워 의지해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주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의뢰하는 시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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