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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 에스디사람

종교, 신앙 코너

구원은 어찌 살아야 하는 걸까?

갈릴리 0 288


구원은 어찌 살아야 하는 걸까?

구원에 대한 오해들이 너무나 많아 때로는 분별하기가 힘이 듭니까?

오늘은 구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의 말씀을 듣고 조금은 의아해 하고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해야 정상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이룬다는 말입니까?

구원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이루셨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미완성된 작품처럼 그것을 완성시키려고 덤비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이룬다는 말입니까?

구원이 어디가 무엇이 부족하단 말입니까?

부족한 구원을 완성시키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혹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완성되는 일입니까?

안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 입니까?

우리에게 이런 저런 생각들 어째서 구원에 대한 오해들이 많은

것일까요?

내게도 무언인가 할 것이 남아있어야지 그냥 받자니 부끄러워서

 그런가요?

구원을 무슨 이론이나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더구나 구원을 행동으로 이룰 수 있는 무슨 계율이거나 교리인줄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요?

구원은 노력에 의해서 성숙해 가는 어떤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을 이룬다는 말은 불완전한 구원을  내가 완전 하게

만든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한 번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룬

 생명입니다. 이 구원을 우리는 받아서 누리는 것입니다.

곧 구원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구원 받았더라도 그 구원을 살지 않으면 그 구원은

튼튼하게 모습을 갖출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생명이 계속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도록 받은 구원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삶인 것입니다.

방금 태어난 갓난아이도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갖춘 온전한

 생명의 소유자입니다.

이 아이의 자람은 계속되는 것처럼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면

새로운 생명을 얻었으면 그 때부터 계속 자라야만 구원의

아름다움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함이니라"고

말한 베드로도 구원을 받았으면 그 안에서 신령한 말씀을 따라

자라가는 말씀이지 구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을 채워간다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육체의 건강과 육체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원을 이룬다” 는 말은 받은 구원을 땀 흘려 훈련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생명을 받았지만 그 생명을 살지 않고 묶어둔다면

육체적 생명이든 영적 생명이든 제 모습을 지닐 수가 있겠습니까?

열심히 땀을 흘려서 구원의 모양새를 가꾸라는 말입니다.

구원을 받은 것은 생명 그것도 영생을 얻은 것이기에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받은 구원 받은 생명을 잘 가꾸는

일은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육체를 가꾸는 일이 개인 개인의 책임이라면 구원을 가꾸는

일도 구원받은 개인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구원을 받았다면 지금 그 구원을 사는  것입니다.

건강과 아름다운 육체의 훈련에도 나름대로 방법이 있습니다.

구원을 살아가는 영적 훈련에도 방법이 있습니다.

바울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복종에는 자신의 의지가 수반되어야  하지만 거기에 자유가 있어야

하고 그 자유를 통해  복종을 해야 합니다. 땀을 흘리는 운동이 라도

아무런 수고나 노력이나 인내 없이 저절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종을 두렵고 떨림으로 하라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복종이란 어려운 행동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철저히 믿지 않으면 철저히 복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종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하고 의지적이어야 하고 가장

자유스러운 마음의 평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고로 복종은 사랑과 존경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복종에 억지와 힘이 개입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복종이 없으면 삶이 없는 것인데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거기에 힘의 강압이 들어가고 억지 춘향이식

복종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은 예수님께 서슴없이 자신들을

종이라 노예라 말한 것을 보철저히 복종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복종으로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구원이 아니라면 우리가 아무리 복종한다 하여도 온전해

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종치 않으면 구원을 온전히 누리고 살수가 없다.

구원을 받았으면 그 구원을 받아 누리고 사는 것,

그것도 두려움과 떨림으로 살아가는 것이요,

그것이 우리의 복종이요 책임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을 이루는 건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 새 생명

 

새 언약의 복음으로 초대합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해진 복음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 그리고

사도들이 전하고 바울이 전한 탄식하며 간구하는 성령하나님이

전하는 복음으로 초대합니다. 후회하지 않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가을학기 95()-1121()

매주 화요일. 오후 7:30-9:00

  연락처 : 213) 434-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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