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의 아브라함 / 다윗 ......, 잘못들 ......, -
- 성경의 아브라함 / 다윗 ......, 잘못들 ......, -
아브라함도 다윗도 그리고 믿음의 많은 선진들도 크고 작은 잘못들을 하였다고
성경은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다.
그런 선진들은,
잘못을 가감 없이 기록한 저자들 자신이
대대로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조상들이다.
이 세상 동서고금 어느 책도
민족의 대표적인 조상들(선지자, 왕 등)의 잘못을
적나라하게 표출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민족(의식)이 사실(의식), 역사(의식), 종교(의식)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성경은 다르다.
왜 그럴까?
성경은 아브라함 다윗 등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기록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아브라함 다윗 등의 과실을 본받지 말라고 기록된 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잘 잘못이 한 세상 사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는 듯 보여도
영원한 삶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살되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라,
살되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라,
살되 더불어 행복하게 영원히 살아라!
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간곡한 부탁과 사랑이 담긴 글이자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부탁과 사랑은
하나님께서 계획의 통로로 사용하셨던 이스라엘 민족의
수많은 과실과 변질과 배신에도 불변이셨다.
즉 성경은,
사람들의 수많은 과실과 변질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아브라함 다윗......, 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통하여
구세주(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고 그 분 예수님을 믿는 전 시대의 온 인류 모든 자들의
영원한 구원의 성취를 알리는 거룩한 선포인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바를 지키시겠다고 선포하신 이상
인간의 과실 변질 배신도 그 하나님의 정하신 바를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시간 년도 역사라는 시대 시기 시점을 구분하기 위하여
BC 및 AD를 쓰고 있는 것 같이 보여도
그 단어가 의미하듯이
이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
즉 구원 방법의 구분의 선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BC 즉 예수님 탄생 이전에는
자연 율법 양심 등을 통한 구원의 길이 있었다면
AD 즉 예수님 탄생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어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셨던 것이다.
성경을 읽거나 이해하고자 할 때
위의 기본 지식 또는 그 마음이 없으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유대민족의 신이라는 등 오해를 거듭하며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 그리고 성령님에 대해서까지
무지와 무식으로 심히 무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영어로 history 라고 쓰고 있다.
이는 His Story 을 줄여 쓴 문자다.
이는 모든 열방 민족 위에 예수님 그분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과연 그분의 이야기,
그분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어 하시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예로, 우리의 단순한 이성 감성 상식으로는
어찌 하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구세주를 이 땅에 보내셨는지를
이해 납득할 수 없다.
단지, 구세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수백 년 전에 이미 말씀하셨다는
기록 밖에는 인간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오직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사실이라고 하시니 순수하게 믿게 되며
또 믿으니 이해가 되고 깊이 느끼게 되며 감동 감화 감사하게 되는 것뿐이다.
결국 성경은 그리고 역사(History)도
그 분을 알게 하는 즉 그 분이 시작이요 끝임을 알리는 선포문인 것이다.
이를 가지고 타협하거나 가감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기 쉬우므로
심히 어리석은 짓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사람의 머리와 노력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천하 만물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구에서 가장 가깝다는 달은 물론
지구 내부 아니 한 생명체의 구조 구성 질서조차
명확히 모르는 것이 그렇게도 과학적으로 발달했다는 우리의 한계 아닌가?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닌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감히 누가 그 중간에 설 수 있겠는가.
사람으로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만물의 생성과 조화와 그 질서들......,
인간의 유한한 머리로는 다 알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이성과 양심, 인격 그리고 어느 정도라도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모르는 것은 잘 모른다고 하고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은 개인적 의견으로 끝나는 것이
양심 있는 자의 도리일 것이다.
감히 어찌 하나님의 깊으신 마음과 계획을 우리 인간이 헤아릴 수 있겠으며
감히 어찌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과 생각을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다.
그분이 내 아버지이심을 알고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신묘막측한 여러 방법으로
그분만이 가능하신 계획과 그분만이 가능하신 그 크신 사랑의 일부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달을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그리고 믿음의 많은 선진들도 크고 작은 잘못들을 하였다고
성경은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다.
그런 선진들은,
잘못을 가감 없이 기록한 저자들 자신이
대대로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조상들이다.
이 세상 동서고금 어느 책도
민족의 대표적인 조상들(선지자, 왕 등)의 잘못을
적나라하게 표출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민족(의식)이 사실(의식), 역사(의식), 종교(의식)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성경은 다르다.
왜 그럴까?
성경은 아브라함 다윗 등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기록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아브라함 다윗 등의 과실을 본받지 말라고 기록된 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잘 잘못이 한 세상 사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는 듯 보여도
영원한 삶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살되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라,
살되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라,
살되 더불어 행복하게 영원히 살아라!
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간곡한 부탁과 사랑이 담긴 글이자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부탁과 사랑은
하나님께서 계획의 통로로 사용하셨던 이스라엘 민족의
수많은 과실과 변질과 배신에도 불변이셨다.
즉 성경은,
사람들의 수많은 과실과 변질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아브라함 다윗......, 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통하여
구세주(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고 그 분 예수님을 믿는 전 시대의 온 인류 모든 자들의
영원한 구원의 성취를 알리는 거룩한 선포인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바를 지키시겠다고 선포하신 이상
인간의 과실 변질 배신도 그 하나님의 정하신 바를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시간 년도 역사라는 시대 시기 시점을 구분하기 위하여
BC 및 AD를 쓰고 있는 것 같이 보여도
그 단어가 의미하듯이
이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
즉 구원 방법의 구분의 선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BC 즉 예수님 탄생 이전에는
자연 율법 양심 등을 통한 구원의 길이 있었다면
AD 즉 예수님 탄생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어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셨던 것이다.
성경을 읽거나 이해하고자 할 때
위의 기본 지식 또는 그 마음이 없으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유대민족의 신이라는 등 오해를 거듭하며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 그리고 성령님에 대해서까지
무지와 무식으로 심히 무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영어로 history 라고 쓰고 있다.
이는 His Story 을 줄여 쓴 문자다.
이는 모든 열방 민족 위에 예수님 그분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과연 그분의 이야기,
그분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어 하시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예로, 우리의 단순한 이성 감성 상식으로는
어찌 하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구세주를 이 땅에 보내셨는지를
이해 납득할 수 없다.
단지, 구세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수백 년 전에 이미 말씀하셨다는
기록 밖에는 인간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오직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사실이라고 하시니 순수하게 믿게 되며
또 믿으니 이해가 되고 깊이 느끼게 되며 감동 감화 감사하게 되는 것뿐이다.
결국 성경은 그리고 역사(History)도
그 분을 알게 하는 즉 그 분이 시작이요 끝임을 알리는 선포문인 것이다.
이를 가지고 타협하거나 가감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기 쉬우므로
심히 어리석은 짓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사람의 머리와 노력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천하 만물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구에서 가장 가깝다는 달은 물론
지구 내부 아니 한 생명체의 구조 구성 질서조차
명확히 모르는 것이 그렇게도 과학적으로 발달했다는 우리의 한계 아닌가?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닌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감히 누가 그 중간에 설 수 있겠는가.
사람으로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만물의 생성과 조화와 그 질서들......,
인간의 유한한 머리로는 다 알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이성과 양심, 인격 그리고 어느 정도라도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모르는 것은 잘 모른다고 하고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은 개인적 의견으로 끝나는 것이
양심 있는 자의 도리일 것이다.
감히 어찌 하나님의 깊으신 마음과 계획을 우리 인간이 헤아릴 수 있겠으며
감히 어찌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과 생각을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다.
그분이 내 아버지이심을 알고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신묘막측한 여러 방법으로
그분만이 가능하신 계획과 그분만이 가능하신 그 크신 사랑의 일부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달을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을 허락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