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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즉문즉설 (3) 뒤셀도르프 “독일에 시집을 왔는데, 적응이 너무 힘들고 하루 하루가 우울해요.”

독일로 시집 와서 살고 있는데 외국에서의 생활이 너무 우울해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갈등하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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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 얻어서 즐겁게 생활했던 사람입니다. 어찌어찌 해서 2년 전에 독일로 시집을 왔지만 아직 독일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독일 사람이라 도와주려고는 하지만 일도 나가야 하고, 도시가 아닌 시골에 살아서 더 그래요.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출근 전 어학학원도 다니고 퇴근 후 헬스도 하는 등 굉장히 바쁘게 잘 살았는데, 여기는 외국이고 또 시골에 있으니까 어학연수를 받고 싶어도 기회가 거의 없이 하루를 집안에서만 보내고 있어서 우울합니다.(질문자 울먹임) 

 

게다가 얼마 전엔 한국에 있는 예전 남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잘 사냐고 물어보는데 결혼했다는 말을 아직 못했어요.(모두 웃음)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지금 생활도 우울하다 보니 정말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독일 사람들이 정이 많진 않더라고요. 잘 대해 주려고는 하지만 가까이 갈 수는 없고 항상 멀리서 지켜만 보고, 친구가 되려고 해도 시간이 좀 오래 걸려야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스님의 지혜를 빌리고자 합니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좋은 도시에서 살고 좋은 학교 가서 좋은 직장 다니다가 좋은 남자 만나서 좋은 나라에 왔잖아요. 그런데 와서 보니까 지옥이에요?” (모두 웃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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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인 줄 알았더니 지옥이라니 마치 쥐가 쥐약 먹었다는 이야기랑 똑같네요.(모두 웃음) 교회 안 다닌다고 하나님이 질문자를 벌 준 것도 아니고, 전생에 죄가 있어서도 아니고, 사주팔자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질문자가 너무 좋은 것만 찾다가 생긴 일이에요. 좋은 것만 찾다가 결국 쥐약을 먹은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일자리라도 찾아서 도시로 나오고 싶지만, 그러면 남편이랑 헤어져야 될 것 같아서 그건 좀 망설여져요. 남편 회사가 시골에 있어요.”

 

“질문자는 차 운전할 줄 몰라요?”

 

“잘 못해요.”

 

“배우면 되죠. 그게 뭐 어려워요? 운전을 배워서 아침마다 도시에 나와서 어학연수 받고 집에 들어가면 되죠.”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 다녔다면서 모아놓은 돈 없어요?”

 

“계속 쌓아놓고만 있어요.” 

 

“그걸 쓰면 되죠.”

 

“그러면 오래 못 갈 것 같아 불안해서요.” 

 

“좋은 학교 나왔다면서 대학 문턱에도 못 가본 저보다도 지혜가 없으시네요.(모두 웃음) 그렇게 움켜쥐고 웅크리고만 있지 말고, 일단 독일에 왔으니까 적응하려고 노력을 한번 해봐요. 노력해보고 안 되면 그때 돌아가도 되잖아요. 그게 뭐 어려워요?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이혼을 하면 안 되고, 남편이 죽어도 그 집에 살아야 하는 옛날 같으면 어렵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결혼했는데 마음에 안 든다고 금방 헤어지면 이것도 인생에서 무책임한 일이에요. 남편하고 어느 정도 대화는 돼요? 무슨 말로 소통해요?”

 

“네, 영어로 대화해요.”

 

“그러면 남편에게 이야기를 해봐요. ‘원래 나는 도시에 살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바쁘게 생활했다. 그런데 이렇게 외국의 시골에 와서 감옥 아닌 감옥살이를 하다 보니 자꾸 우울해지고 활기가 떨어진다. 어차피 독일에서 살려면 영어로만은 힘들고 독일말도 좀 배워야 하니까 내가 작은 차를 하나 사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어학연수를 좀 다니고 싶다.’ 

 

어차피 질문자는 지금 할 일도 없잖아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버스 서너 번씩 갈아타는 걸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바람 쐰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가서 수업 들은 뒤 다시 버스 서너 번 갈아타고 집에 오면 하루가 금방 가요. 시내만 다녀오면 하루가 가버리니까 지루해 할 시간이 없잖아요. 저는 한가한 걸 좋아하니까 그게 귀찮지만 질문자는 바쁜 걸 좋아하니까요.(모두 웃음)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적응을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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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사람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린다는 뜻이에요. 이 말은 고추 모종, 깨 모종, 모내기 같은 걸 하는 과정에서 나왔어요. 못자리에서 모를 뽑아서 논에 옮겨 심잖아요. 물속에 심어놓더라도 옮겨 심는 날부터 바로 잘 사는 게 아니에요. 옮겨 심은 후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록 잎이 배배 틀어지면서 마치 죽을 것처럼 보입니다. 고추 모종이며 깨 모종도 옮겨 심어놓으면 처음에는 죽을 것처럼 잎이 전부 쳐져 있어요. 그런데 일주일 정도 지나면 배배 틀어졌던 잎이 조금씩 펴지고, 열흘쯤 지나면 아주 싱싱해져요. 그러면 사람들이 ‘아이고, 벼가 사람했네’ 이렇게 말해요. 살았다는 말이에요. 

 

옮겨 심은 것이 뿌리를 내리려면 물에 담궈놓는 이런 식물들도 일주일은 걸립니다. 열흘 걸리는 것도 있고, 보름 걸리는 것도 있어요. 잔뿌리를 내려야 하거든요. 수분을 흡수하려면 잔뿌리가 있어야 하는데 굵은 뿌리만 잡아당겨 뽑아서 심어놓으면 수분 흡수가 잘 안 돼요. 나무는 옮겨 심은 것이 다시 살아나려면 3년쯤 걸립니다. 옮겨 심고 첫 3년간은 나무가 제대로 자라질 않습니다. 다시 살아나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그것처럼 질문자는 준비가 되어서 독일에 온 게 아니에요. 독일에서 좀 살아보고 한국에도 왔다가 다시 나간다거나 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약간 준비가 되어 있었겠지만 그냥 온 것은 이쪽에 있던 나무를 그냥 쑥 뽑아서 저쪽에 심은 것과 같아요. 그러면 새로이 뿌리를 내리기까지 최소 3년은 걸려요. 여기 선배들한테 물어보면 알아요.(모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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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로 독일에 오게 돼서 좋아했다가 처음 1년, 2년, 3년까지는 맨날 고향 생각하고 울면서 후회한 사람들일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이라도 비행기 타고 돌아갈 수 있고 옛날 남자친구도 한국에 있지만(모두 웃음) 여기 간호사로 오신 분들은 스물 몇 살에 와서 돌아가려고 해야 돌아갈 수도 없었어요. 그렇게 되니 오히려 뿌리를 빨리 내립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으면 뿌리가 잘 안 내려져요. 늘 돌아갈 생각을 하니까요.

 

여기에 적응하려면 한국에서 연락해온 전 남자친구에게 ‘나 결혼해서 독일에 산다. 너도 잘 살아라.’ 이러고 다 끊어야 해요. 거기에 미련을 두면 여기에 적응하기 힘들어요. 온지 2년 지났으면 뿌리내릴 때가 다 되어갈 텐데 질문자는 늘 그런 생각을 하니 아직 뿌리를 못 내렸어요.

 

그러니 남편에게 이야기를 해보세요. ‘내 사정이 지금 이러저러하고 내가 뿌리를 내리려면 좀 적응을 해야 하니까 나한테 시간적인 기회를 달라’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 방법을 함께 찾아보세요. 남편만 쳐다보고 있으면 나도 힘들지만 상대도 점점 귀찮아져요. 어떤 사람이 나한테만 너무 매달리면 그게 나중에는 속박이 되고 귀찮아지거든요. 너무 그 사람만 쳐다보고 있으면 나도 힘들고요. 질문자가 사는 곳에서 어디든 가까운 도시로 나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본까지 가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려요.”

 

“한 시간 반 정도면 다닐 만 하겠네요. 그러면 모아놓은 돈을 그냥 거기에 써요. 오래 놔두면 곰팡이만 슬죠.(모두 웃음) 그러니 그 돈 가지고 왔다 갔다 하면서 한 1년간 더 노력해 보세요. 1년쯤 더 노력해보고 결정을 내리면 나중에 후회를 안 해요. 지금 이렇게 어영부영 있다가 그만두고 돌아가면 나중에 또 후회하기 쉬워요. 내가 지금 이 선택도 잘못했는데, 다음 선택을 했을 때 그게 더 잘못될 가능성도 있어요. 그리 됐을 때 ‘아,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적응해 볼 걸, 노력해 볼 걸’ 이렇게 굉장히 후회가 됩니다.

 

결혼했기 때문에 그만두지 마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질문자는 결혼해서 독일로 올 때 자기가 선택을 잘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잘 한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게 잘못됐다고 금방 또 뒤집었을 때 이 선택도 처음 선택처럼 경솔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한번 선택이 경솔했다면 두 번째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해요. 결혼을 경솔하게 선택했다면 이혼을 신중하게 해야 해요. 이것도 경솔하게 처리하면 또 후회하게 되니까요. 그러니 이번에는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보세요. 옛날 남자친구의 접근은 잘못 걸리면 쥐약 정도가 아니라 몇 배로 독한 농약이 될지도 몰라요.(모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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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환경은 스스로 이미 선택한 것이잖아요. 현재의 선택에 조금 더 시간을 주고, 조금 더 노력해볼 필요가 있어요. 이왕 선택한 현실이니까 여기에 조금 더 뿌리를 내리려는 노력을 해보고, 그래도 안 되겠다면 그때 가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우선은 노력을 좀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차비하고 어학연수비는 질문자 돈으로 낼 수 있지요? 돈 벌어놓은 게 별로 없는지 망설이는 걸 보면 그리 좋은 직장이 아니었나 봐요.(모두 웃음) 차비 쓰는 것도 아까워 덜덜 떨어서 어떻게 살아요? 앞으로 1년간은 돈을 아끼지 말고 쓰세요. 낭비하라는 게 아니라 필요한 돈을 쓰라는 겁니다. 돈은 쓰려고 버는 것이지, 모아놓으라고 버는 게 아니에요. 필요한 데 써야 효율성이 있습니다. 

 

질문자가 이런 상태로 계속 있게 되면 우울증에 걸려서 병원비며 다른 비용으로 더 많은 돈을 낭비할 수 있어요. 그런 게 ‘돈에 곰팡이 스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돈에 쩔쩔매지 말고 필요한 곳에 적절히 쓰세요. 또 필요하면 남편에게도 ‘내가 이런 노력을 하는 동안 좀 지원해달라’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를 해야 해요. 그렇게 해보고도 잘 안 되면 그때 가서 또 선택을 하면 되죠.”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일을 하라면서 자꾸 등을 떠미세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좋은 직업을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눈높이를 많이 낮춰야 해요. 그것도 잘 적응이 안 돼요.”

 

“한국에 나와 있는 베트남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베트남 안에서는 호치민 대학이니 하노이 대학을 나온 게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사람들이 이민 와서 한국 사회에서 살 때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고등학교 나온 사람이나 호치민 대학 나온 사람이나 하노이 대학 나온 사람이나 별다르지 않아요. 한국 사회 안에서는 서울대학교니 고려대학교니 연세대학교 나온 게 중요하지만 독일 사회에 오면 그 사람이 고등학교 나왔든 서울대학교 나왔든 독일사람 눈에는 별 의미가 없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누가 집사니 권사니 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절에 왔을 때는 그 사람이 집사를 하다 왔든, 권사를 하다 왔든, 장로를 지내다 왔든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모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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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는 지금 독일에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다녔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건 이미 한여름밤의 꿈처럼 다 지나간 이야기예요. 질문자가 지금 독일에 왔으면 그냥 이민 온 사회에서 초보로 시작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청소부 일이든 서빙하는 일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말이 좀 안 통하더라도 식당에 가서 서빙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이렇게라도 시작해보려는 마음을 가져야지요.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직장이 어땠고 전공이 어땠다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그냥 늘 꿈을 먹고 사는 거예요. 그게 더 큰 병이에요. 

 

시아버지가 직장을 다녀라, 마라 하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질문자가 이미 선택을 해서 다른 사회에 왔잖아요. 북한에서 당 간부를 하던 사람이 한국에 왔다고 생각해봐요. 북한 내에서는 당 간부와 일반인은 양반과 상놈만큼 천지 차이지만 그 사람이 북한을 떠나서 한국에 왔을 때는 당 간부 했던 게 아무 도움이 안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내가 뭘 했다는 게 여기서는 하등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니 그건 버리고 독일에서 직장을 찾아보세요. 좋은 직장을 찾으려 하거나 돈 버는 데 목적을 두지 마세요. 집에 그냥 있으려니 우울증 걸리잖아요. 그러니 소일거리 하나를 정해서 가볍게 서빙 같은 일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그게 쉽지가 않다면 조금 병적인 심리상태에 놓여 있는 거예요. 그런 상태로는 한국에 돌아가도 결과가 좋지 않을 겁니다. 결혼했다는 말을 안 한 채 한국에 돌아가서 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고 희망을 가졌는데 질문자가 사실은 결혼했다는 사실을 그 사람이 알게 된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더 큰 불행을 또 자초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내일이라도 전화가 또 오거든 결혼해서 독일에 있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게 좋아요. 그래도 그 남자가 질문자가 돌아올 때까지 몇 년이고 기다리겠다고 하면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도 오히려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결혼했다는 사실을 숨겨놓는다면 지금 질문자는 엄청난 불행을 새로이 잉태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게 더 어리석은 거예요.”

 

“용기가 안 나요.” (질문자 울먹임)

 

“결혼한 걸 결혼했다고 말하는 데 무슨 용기가 필요해요? 상담 치료를 좀 받아야 되겠네요. 이렇게 되면 이제 망상증이 되거나 하는 거예요.”

 

“상처 줄까 봐서요.”

 

“걱정하지 말아요. 질문자가 결혼했다고 하면 ‘아, 그래? 안 그래도 네게 약간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잘 됐다’ 이러고 다른 여자한테 금방 장가갈 수도 있어요.(모두 웃음) 그런 걱정이 쓸데없는 과대망상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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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육체에 대해서는 치료를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그냥 네가 정신만 차리면 된다’ 이렇게 쉽게 말합니다. 정신도 육체와 똑같이 치료를 요합니다. 연애하다 실패하거나 시험에 떨어져서 약간 충격을 받은 것이나 교통사고를 당해서 약간 놀란 것도 다 트라우마가 되어서 치료가 필요한 거예요. 질문자는 결혼과 동시에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서 지금 우울감이 심해졌기 때문에 이건 치료가 필요해요. 그러니 우선 병원에 가보는 게 좋습니다. 

 

질문자가 정신적으로 건강한지 스스로 검증해보는 방법은 뭘까요? 전 남자친구가 전화해서 잘 지내냐고 물으면 ‘응, 나 독일에 있다’라고 하고, ‘독일에서 뭐 하냐?’라고 물으면 ‘응, 남자 하나 만나서 따라왔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지금 살기 좋으냐?’

‘글쎄, 따라올 때는 좋은 줄 알고 따라왔는데 아직 썩 정이 안 들고 있다.’

‘그러면 돌아와라.’

‘아니야, 이왕 왔으니 한 1~2년 더 적응해보고 정 안 되면 돌아갈게.’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정신이 건강한 축에 들어갑니다. 이야기하면 충격 받지 않겠냐며 질문자처럼 걱정하는 건 좀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무의식 속에 기회를 하나 남겨놓으려는 마음이 숨어 있어요. 돈을 꼬불쳐놓듯이 사람도 하나 꼬불쳐놓으려고 하는 무의식을 질문자가 지금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걸 툭 털어야 정신이 아주 건강한 상태가 될 수 있어요.” 

 

“하나 더 여쭤볼게요. 남편은 아이를 원하는데 저는 아직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런 건 혼자 사는 스님한테 물을 이야기가 아니죠. 아무리 즉문즉설이라지만 제가 그런 것까지 대답해줘야 해요? (모두 큰 웃음) 내가 안 낳고 싶으면 안 낳고, 낳고 싶으면 낳는 거죠. 그런 문제는 첫째, 내 선택이 중요합니다.

 

둘째, 부부가 같이 살려면 내 의견만 고집할 수 없어요. 상대의 의견도 어느 정도 고려를 해야죠. 마냥 상대가 하자는 대로 따라 해도 안 되지만, 내 고집대로만 해서도 안 돼요. 그러면 결혼을 할 필요가 없죠. 그러니 그 문제는 내 의견을 상대에게 말하되 서로 조정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이 결혼생활에 대해서 무의식 세계에서 약간 회의적이니까 아기를 안 갖겠다고 할 수 있어요. 그건 충분히 이해해요. 아이를 일단 낳으면 아이가 커서 자립할 때까지 20년 정도는 헤어지지 않고 살아야 하니까요. 거기에 대해서 질문자가 지금 신중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건 반드시 고집할 만한 일은 아니에요. ‘지금 내가 적응을 잘 못 하고 우울한 상태니까 아이는 내가 좀 더 적응한 뒤에 낳는 게 좋겠다’라고 부부간에 대화를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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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우울증이 있는 상태에서는 아이를 낳아도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줘요. 지금 질문자가 아이를 낳느냐 안 낳느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먼저 질문자가 행복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먼저 행복해지고 나서 아이를 낳아야 해요. 내가 행복하다면 설령 이혼하더라도 내가 낳은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면서 후회 하지 않고 재미있게 살 수 있어야 해요. 그러면 아이는 괜찮아요.” 

 

“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스님의 자상한 답변에 질문자가 활짝 웃었습니다. 청중들은 스님의 답변 내용에 크게 공감하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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