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신앙 코너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W.C.C.1차~5차

마헬살랄 하스바스 0 3018
기독교 종말의 최대의 미혹의 단체=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통해 드러난 저들의 정체

 W.C.C.(세계교회협의회)란 세계의 그리스도교파 간의 연합기구를 말합니다. 한국 교회는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라는 이름으로 W.C.C.에 가입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K.N.C.C. 가입교단은 총 9개교단으로서 다음과 같습니다.

< ①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② 기독교대한감리회  ③ 한국기독교장로회  ④ 대한성공회  ⑤ 구세군 대한본영  ⑥ 기독교대한복음교회  ⑦ 한국정교회  ⑧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  ⑨ 기독교한국루터회 ☞ 2011.11월 가입>. 위 교단들 소속의 성도 님들께서는 본 문서를 더욱더 분별하여 읽으셔야 할 줄 믿습니다.

 
W.C.C.가 발족되기 전, 소련의 스탈린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평화연맹’을 조직하였습니다(1947.9). 이 단체는 주로 소련공산당 지도자들과 위성국의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되었는데, 기독교회 침투를 위한 세계적화 사령부격이었습니다.

스탈린은 러시아 정교회의 신학생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러시아 교회의 타락상을 보고 “하나님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다”는 마귀적인 감화아래 레닌과 힘을 합쳐 노동자 농민을 선동함으로 공산주의 피의 혁명을 이루어 낸 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따르던 자가 타락하면 무신론자가 되고, 자본주의가 부패하면 반갑지 않은 도적 ‘공산주의’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붉은 말(계6:4, 8:7)의 혁명 기간동안 러시아는 자민족 약 5,000만명을 희생시켰습니다(1917-1957)

 이러한 살인집단이 아무런 회개도 없이 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 때(1958.3.18) 갑자기 색깔을 바꾸어 <평화공존, 핵무기제한, 핵실험금지> 등의 소위 평화공존 정책을 들고 나왔으니, 이는 위장된 궤휼(거짓말)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계6:8). 무신론 공산주의 집단이 피흘림의 타도정치를 끝내고, 공존하자는 궤휼로 색깔을 바꾸고 나오면서 적극 이용한 것이 바로 W.C.C.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전략과 전술이 있는데, 전략은 요동치 않는 거시목표이며, 전술은 그것을 이루어내는 다양한 방법들입니다. 아직까지 변치 않고 있는 저들의 목표는 바로 ‘세계적화’이며, 그 성취를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바로 “교회 속으로 침투하자”는 착상이었습니다. 세계적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된 뛰어난 기만전술의 장! 그 무대가 소위 ‘세계교회협의회’라 이름하는 W.C.C.인 것입니다. 지금부터 W.C.C.의 발자취를 살펴볼 때에 가입교단 내의 순진한 성도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제1차 총회

 
1948년 8월 13일,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44개국 147교회가 모였습니다. 스탈린이 1947년 9월 바르샤바에서 <서방교회 침투전략>을 세우고 <평화연맹>을 조직하여 1948년 8월 W.C.C. 1차총회에 약 60~70 여명의 동유럽 공산국가 정보요원들을 위장 침투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체코 출신의 ‘흐루막카’와 폴란드 출신의 ‘나즐로 패트’가 W.C.C.중앙위원에 임명되었습니다. 스탈린이 죽기 3년 전(1950.4), 바르샤바에서는 세계평화회의(W.P.C.)라는 공산권 교회기구가 조직되었는데, 여기에 68개교단 98명이 참가하여 W.C.C. 2차총회 잠식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1953년 6월, 스탈린이 사망한 후 흐루시쵸프는 스탈린의 종교침투정책을 계승하면서 그 조직을  <세계기독교평화회의>로 확대하였습니다(1958.11). ‘평화공존’정책으로 유명한 그는 겉으로는 위장평화에, 속으로는 서방침투에 온 노력을 기울였고, 1967년 3차회의 때는 K.G.B.두목인 니코딤을 ‘세계기독교평화회의’ 의장에 임명함으로써 공산당의 세계교회침투를 적극 장려하였습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공산당)의 궤휼정치는 1975년 1월 <아시아기독교평화회의> 등의 관련기구들의 확대로 더욱 탄력을 받았으며, 이로써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교회(W.C.C.) 안에서 활개를 치게 되었습니다.

 
제2차 총회

1954년 8월, 미국 에반스톤에서 열렸으며 “현대의 정치적 정의는 공존”이라는 모토를 내세웠고, ‘그리스정교회’가 인정됨으로써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터키의 정교회가 정식회원으로 가입되었습니다. 이 총회에서는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시키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이 W.C.C.의 지상목표”라는 신앙고백을 선언함으로써 스탈린의 평화공존 결의안을 지지하였고, 우리나라도 이 2차총회 때 가입신청을 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보수-진보가 갈라지기 시작한 분기점이었고 쓰라린 6.25 전쟁의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또다른 사상전(색깔론)의 시작이었습니다. W.C.C. 찬반론을 놓고 교회가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당시 보수교단들은 반대연설을 하고 퇴장하였으나 기장, 기감, 예장(통합) 측은 N.C.C.K. (National Council of Church, Korea)의 이름으로 W.C.C.에 가입함으로써 사탄의 마수(魔手)가 동방 땅 끝에까지 뻗어 오게 된 것입니다.

 
붉은 짐승들이 이처럼 양의 탈을 쓰고서 W.C.C.와 그 산하 단체인 “아시아교회협의회(C.C.A.),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산업선교회(U.I.M.), 기독학생총연맹(S.C.F.)”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섭고도 놀랄 만한 사실입니다. 사단도 ‘광명의 천사’(고후11:14)로 가장하므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 무지합니다.

바꿔말하면 이는 기독교가 눈이 가리워진 채 깊은 잠에 취해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니, 예언서로 각성받아 잠을 깰 때는 지금인 것입니다. 스탈린을 격하시키며 서방세계를 속이고 나온 소련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쵸프는 제3차 총회에 대비하여 체코 프라하에서 “세계기독교평화회의”를 조직했고(1958.11), 여기에 서방교회 600 여명이 참가하였는데, “동서공존”이라는 흐루시쵸프의 위장정책이 먹혀든 결과입니다.

흐루시쵸프는 <기독교와의 평화공존을 강령화>했으며, 제3차 총회에 대하여 숙의했습니다. “평화전술”은 꿀바른 독약에 불과합니다. 김홍도 목사의 『공산주의와 기독교 신앙』이라는 글을 보면 흐루시쵸프가 서기장이 된 후에 한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련의 모든 기독교인들을 다 없이하고 마지막 한 사람을 전국 모든 사람이 TV로 볼 수 있게끔 한 다음에 죽여버려 소련 땅에서 교인 씨를 완전히 말려 버리겠다.” 그러나 그가 이 일을 시행하기 전, 하나님이 먼저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제3차 총회

1961년 11월,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대회 대표들은 “세계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란 표어 아래서“타 종교들도 세계에 빛을 발하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발족된 지 13년 만에 마귀적 본질을 대놓고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당시 소련 K.G.B.(국가보안위원회) 요원이면서 동시에 ‘세계기독교평화회의' 의장인 ‘니코딤'은 3차 총회에 소련교회 대표 자격으로 16명을 인솔하여 루마니아, 폴란드, 불가리아와 더불어 정식회원으로 가입하였으며, 이때 그는 W.C.C. 중앙위원에 임명됨과 동시에 W.C.C. 회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이 일의 배후에는 흐루시쵸프의 세계적화야욕이 숨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니코딤은 이 대회에서 예수만이 세계의 유일한 구세주(행4:12)이심은 전혀 말못하고 흐루시쵸프의 공산당노선을 선전했으며, “마르크스주의(marxism)는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위한 필수이념”이라고 하는 성명서를 채택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정식회원국이 된 것도 이 3차 대회 때입니다(참된 성도라면 이러한 사악한 영적 배경을 이해하고 대한민국 기독교회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회개치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W.C.C.는 창설 당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를 다같이 지적하면서 대화로써 평화공존을 모색하자는 그럴 듯한 뜻을 품고 시작됐지만, 실은 공산권 병폐보다 서방세계의 병폐를 지적하는데 치중했습니다. 이러한 때 니코딤이 회장에 당선됨으로써 그 성격이 더욱 공산주의의 선전기관 및 침투기구로 변하였던 것이고, 그들은 또한 ‘산업선교’라는 미명하에 공산주의 노동운동을 전개했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뿐만 아니라 당시 국내에서도 이로 인해 큰 소용돌이가 일어났던 바가 있습니다. 1966년 제네바에서는 “혁명을 위한 개혁”이란 주제 아래 산하교회와 사회분과 위원회가 개최되어 “보다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파괴원리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공개 성명서를 채택하였습니다.

 
제4차 총회

1968년 7월, 스웨덴 웁살라에서 개최되었으며 “만물을 새롭게 하라”는 주제 하에 “그리스도 외에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인정한 완전히 적그리스도적인 총회요, 비성경적인 대회였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이처럼 득실대는 세계교회협의회 안에 현재 한국의 9개 교단이 가입하고 있는 실정은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①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② 기독교대한감리회  ③ 한국기독교장로회  ④ 대한성공회  ⑤ 구세군 대한본영  ⑥ 기독교대한복음교회  ⑦ 한국정교회  ⑧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  ⑨ 기독교한국루터회 ☞ 루터교는 2011.11월에 가입

 
거기서 무엇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왜 그들과 함께 팔장을 끼고 그곳에 합류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4차 총회 때부터는 이방 종교에 대하여 “다른 신앙들”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니 거기서 나오지 않는 한, 저들의 가증한 신앙고백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필립 포터 총무는 1969년 5월 25일자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지에 “W.C.C.는 만일 폭력이 정치적 경제적 독재를 전복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면 그 폭력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기고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마26:52)과 정 반대되는 사상을 선포했고, 또『기독교 사상』1972년 11월호에서는 “폭력혁명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기독교의 봉사를 말할 수 없는 시기가 왔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공산혁명 과업을 교회가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에큐메니칼 리뷰』지에는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군사 원조를 끊어야 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W.C.C. 총무의 발언들은 하나같이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현 북한의 주장과도 동일합니다). W.C.C. 총무가 말하는 해방이란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자본주의와 계급사회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9개 교단의 지도자들과 회원성도들이여! 이런 명백한 사실들을 정녕 모르기에 그들과 손잡고 있는 것입니까?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알고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까? ..... 그렇다면 무얼 위해서입니까?

1971년부터 W.C.C.는 회교, 불교, 힌두교, 유대교 회의를 지원했습니다. 이제 <다른 신앙들>이라는 용어를 변화시켜 아예 <살아있는 신앙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의 증거를 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정도로써도 W.C.C.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키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당시 총회는 <인종차별, 세계평화, 사회정의>를 외치며 제3세계 발전에 무관심했던 교회의 죄를 고백한다는 구실로 “인종차별주의 철폐 투쟁기구”를 신설키로 합의하고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등 세계 도처에서 혁명을 위해 투쟁중인 마르크스주의 게릴라들에게 자금을 지원키로 결의하여 모금운동에 착수했습니다.

1970년 가을에는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아,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좌익 게릴라 단체에 300만불을 지원함으로써 로디지아 정부가 전복되고 40 여명 이상의 보수주의 선교사가 살해당하는 결과를 낳게 하였습니다(마음이 깨끗하고 정직한 성도들과 목회자들이여! 이 글을 읽고 깨달음이 있으시다면 과감히 그 가증한 W.C.C.(종교바벨탑)에서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일곱째 머리 짐승정권이요, 붉은말이요(타도정권), 청황색말의 본부(궤휼주의)인 러시아는 제5차 총회에 대비하여 1975년 1월 인도 곧다암에서 “아세아 기독교 평화회의”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때 북한까지도 “조선 인민공화국 기독교연맹”이란 거짓 이름으로 참석하였으니, 현재 북한교회를 돕겠다는 대한민국 교단들의 어리석음이 어찌 사단에게 속은 결과가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4차총회에서는 ① 남한으로부터 미군철수. ② 미-일의 남한군사원조 반대. ③ 남한 기독교(진보파)인 중심의 ‘민중옹호투쟁’ 지지 및 ‘투옥자 석방’ 등의 내용이 결의되었습니다.

제5차 총회

1975년 11월, 아프리카 캐냐 나이로비에서 “해방의 신학 : 자유케 하시는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286개 교파의 747명 대표들이 모였습니다. 이 총회에는 로마교황청이 파견한 16명의 천주교인과 이방 종교들에서도 옵저버로 참가하였고, 총회의 대변자 로버트 브라운은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교(이슬람), 힌두교, 불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말도 들을 수 있는 때가 왔다”는 정신나간 발언을 하였습니다.

소련의 비밀경찰 두목이며 평화연맹 의장인 ‘니코딤’이 의장에 당선되었고, 마르크스주의자인 ‘필립 포터’ 목사가 총무에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소련 K.G.B 요원 니코딤은 소련교회 대표 36명을 인솔하여 참가했고, 미국대표 로버트 브라운(기독교 윤리학 교수)은 기조 연설에서 “해방을 위한 의식화 고취”를 연설한데 이어 ‘아세아 기독교 평화회의’에서 북괴가 주장한 내용을 제5차 총회 성명서 내용에 포함시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전과 달리 호의를 보인 로마가톨릭의 참가는 눈여겨볼 대목인데, 겉으로는 가톨릭이 W.C.C.의 초대에 응한 것 같지만 실은 W.C.C.를 로마화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참석했음을 간과치 말아야 합니다. 가톨릭은 로마(교황청)가 중심이 된 초교파 거대종교체제(음녀)를 꿈꾸고 있습니다.

총회 신앙고백서는 ① 마르크스 게릴라운동을 공식 승인하고 ② “자본주의와 인종차별주의 및 식민주의의 불의한 모든 구조를 파괴하지 않는 한 어느 국가나 민족도 자유를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사회주의는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는 첩경”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사태가 이쯤 되었다면 한국 교회는 W.C.C.가 영적으로 미친 단체임을 분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더욱더 힘을 내어 죄악의 도성(W.C.C.) 속으로 달려들어갔습니다. 반면 미국의 타임지(1975.11.24일자)는 나이로비 총회에 대하여 “W.C.C.는 세계 크리스챤을 연합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되어 신학적인 차이점들을 감소시키는데 주력해 왔으나 사회적 정치적 해방의 문제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라는 분별된 보도를 했습니다.

1977년 W.C.C. 필립 포터 박사는 중앙위 기조연설에서 “공산주의가 베트남에서 승리한 것은 베트남 인민의 위대한 해방이며,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이 위대한 베트남의 승리는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전 세계 인민을 고무시키고 있다”라고 발언하였습니다(W.C.C.회보 E.P.S. 77.6.9 기사).

이렇게 노골적으로 완전한 마귀적 발언들을 내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거대교단들이 아직까지 무분별하게 이 가증한 단체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은 영적인 살인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글을 무심코 지나쳐 버리지 마시고 사실(fact) 관계 확인하시며 분별, 또 분별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예수님의 목적이 그러하셨으므로 그 가지된 우리 또한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약4:7)는 말씀을 붙들고 북방 악의 사상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상과 행위는‘적그리스도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을 싸우게 되면 가입된 한국의 9개 교단으로부터 미움을 받겠지만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하신 말씀이 계시니 우리는 더욱 힘을 내어 “악(惡)은 악(惡)이라, 선(善)은 선(善)이라” 해야 합니다.

 사 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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