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년 프로그램

전국 바라지 모집

모집 : 5월 27일(월) ~ 6월 2일(일) 까지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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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다시 만나다

2024 행복한 대화

법륜스님의 오프강연 행복한 대화 시즌2!
오프강연이 전국 15개 도시로 직접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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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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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아무 문제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강승연 님은 사무처 회원국 교육 연수팀에서 일반 회원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당일 함께 참가한 희망리포터들이 예기치 않은 프로그램 오류를 해결하지 못해 허둥댔습니다. 그 어수선한 와중 강승연 님은 오늘 가장 긴장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닌가요?”라며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봄날 벚꽃잎이 흩날리듯 희망리포터들은 웃음꽃을 피웠고, 편안하게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좋은 엄마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살 만했습니다. 마흔 넘어 아이를 키우며 처음으로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첫째가 심하게 손가락을 빨고 떼를 썼습니다. 저는 강제로 아이 손가락을 빼고 혼내고 다그쳤습니다. 그럴수록 아이는 더 나빠졌습니다. 아이에게 소리치고 화내는 내가 싫었습니다. 좋은 엄마를 꿈꾸었지만, 엄마로서 실패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못마땅한 아이의 행동을 보면 아이를 잘못 키우는 것 같아 조급하고 불안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육아 기술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해 이 책, 저 책을 뒤지고 방송을 들었습니다. 가치관을 재정립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여 인터넷 철학 강의, 백화점 문화 강좌를 기웃거렸습니다. 한라산에서 아이들과 함께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번민만 커질 무렵, 우연히 팟캐스트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짬짬이 들었습니다. 후에 즉문즉설 내용에 심취하여 혼자 차 안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고 웃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어떤 육아 책이나 방송보다 큰 지침이었습니다. 육아 기술보다 나의 마음 상태, 불안한 나를 보았습니다. 아이한테 쏠려 있던 시선을 내게 돌리니, 아이와 거리를 둘 수 있었고, 버겁던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어린이집 원장님에게 육아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니, 원장님은 정토 불교대학을 권유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강의 시간에 맞추기 힘들었지만,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내가 변해야 한다라는 간절한 원으로 불교대학에 다녔습니다. 비정상 가족 부모님 이혼 후, 태어난 지 2주 된 동생과 저는 할머니 손에 맡겨졌습니다. 할머니는 저보다 일곱 살 많은 삼촌까지 아이 셋을 키워야 했습니다. 불교 신자인 할머니는 절에 갈 때면 자주 저를 데려갔고, 불경을 듣고 사경했습니다. 엄마 없이 컸다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할머니는 저희를 엄하게 키웠습니다. 스스로를 챙기고, 집안일도 돕고, 행동을 바르게 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동생과 싸울 때면 할머니한테 몽둥이로 맞고 울기도 했지만, 할머니 뜻에 따르려 했고, 모범생으로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정성으로 길러준 할머니에게 살가움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할머니 손에 크고 있다라는 사실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데, 나만 할머니와 사는 것은 비정상이고 대단한 불행이다라고 여겼습니다. 한번은 중학교 때 이 문제로 학교에서 상처를 받고, 집에 와 할머니 품에 안겨 운 적이 있습니다. 감추고 싶은 나의 가정사를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며칠이 지나 다른 친구를 통해 그 말을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 아무리 친한 사람에게도 나의 가정사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용인법당 도반들과 불교대학 홍보 한편 동생을 잘 챙겨야 한다라는 의무감으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 눈치를 봤습니다. 겉으로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성격 좋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제 안에는 억누르고 참았던 응어리가 있었습니다. 여섯 살쯤 아버지는 재혼했고, 중학교 때 이혼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따금 술에 취해 전화로 사랑한다라고 울먹일 때는, 아빠와 같이 살 수 없는 상황에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왔습니다. 슬프고 외로운 날이면 일기장에 마음을 털어놓으며 펑펑 울었습니다. 일기를 쓰면 마음이 풀리면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픔을 겪었기에 나는 절대 이혼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흔들림 없는 결혼생활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에 여유가 없고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웃을 때, 같이 웃고 노는 것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잘 키워야 한다라는 의무감이 앞서 자연스럽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울면 내가 뭘 잘못해서 우나?라고 자책했습니다. 동화책을 읽어주다 내 생각에 빠져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엄마로서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19차 회향식 축하공연 남편과는 7년 반 연애했고,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잘 지내리라 믿고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작은아이가 태어나고, 큰아이의 퇴행 행동으로 육아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찼을 때, 남편과의 갈등도 고조되었습니다. 회사 생활이 바쁘다라는 핑계로 육아에 협조하지 않는 남편에게 잔소리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 와 서재에 들어가는 남편이 못마땅하고 얄미웠습니다. 남편과 갈등을 겪으며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열망이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남편과도 흔들림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앞날의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펑펑 쏟은 눈물 〈깨달음의 장각주7〉에 다녀오고, 닷새 후 만난 아이들은 낯설었습니다. 목욕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아이들이 평소보다 20퍼센트 정도 작아 보였습니다. 그동안 다 큰 아이처럼 대했던 큰아이가 세 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펑펑 울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서재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인 술잔과 노트북, 혼자 잠든 남편을 보고 그의 고단함을 느꼈습니다. 회사에서 귀가하는 남편을 반겨주기는커녕 투덜대고 잔소리하는 나 때문에 힘들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을 이해하니 원망이 녹고 미안함이 밀려와 그날도 펑펑 울었습니다. 2019년 경전대학 졸업식, 동기 도반들과 어느 날 아침 기도 중 한 달 만에 집에 온 아버지가 나를 딱하게 바라보던 어릴 적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새어머니 눈치 보느라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반갑다는 말도 못 하고, 자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지 못한 부모 마음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절하다 방석에 엎드려 펑펑 울었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보낸 시간이 죄송했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났습니다. 돌고 돌아 제자리 남을 의식하고 잘해야 한다라는 마음이 가족은 물론 인간관계에서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엄마들 모임에서 말실수라도 하면 나를 싫어할 것 같았고, 시부모에게는 더 잘해야 한다라고 전전긍긍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수행은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돌고 돌아 갈등의 원인을 내 안에서 발견하고 괴로운 마음이 풀리니, 그동안 풀리지 않은 관계들이 저절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2019년 청춘톡톡 거리홍보 온라인 명상 때, 내가 아이들에게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보살피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있어 삶에 에너지가 생기고, 생활 리듬을 지킬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한때 아이들과 긴 방학을 보내는 것이 두려웠는데, 요즘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큰아이는 나의 부처님 결혼 후 큰아이가 세 살,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회사에 다녔습니다. 큰아이는 베이비시터와 번갈아 양육했습니다. 이때 내가 양육자로서 안정감을 주지 못했는지, 환경이 바뀔 때마다 큰아이는 적응을 어려워했습니다. 불교대학 전단지 작업 중인 아이들 지난해 큰아이가 새로 옮긴 학교에 다니기 싫다라고 했습니다. 아이 걱정을 하면서도 ‘아이에게 문제 있다’라고 동네 엄마들에게 소문날까? 걱정하는 나를 보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학교에 보내려고 발버둥을 쳤을 텐데, 내 마음을 알아차리니 아이의 마음도, 주어진 현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은 3개월 동안 아이와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자전거도 실컷 탔습니다.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고, 지나고 나니 별일 아니고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3개월을 쉬고 아이는 전에 다니던 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큰아이는 TV 시청과 게임을 못 하게 하는 저에게 거세게 반항합니다. 큰아이는 저에게 끊임없이 과제를 주는 부처님입니다. 내가 수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아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2017년부터 매일 꾸준히 수행하니, 힘들었던 시기를 긍정적이고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지만, 불행이라 생각한 가정 환경이 꼭 나쁘다라고만 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 없이 자랐기에 시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엄격했던 할머니 덕분에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며 독립심을 키웠던 경험은, 세상 살아가는 데 좋은 자산이었습니다. 제주법당 도반님들과 작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행하지 않았다면 암에 걸린 것이 큰 장애였을 텐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괴로워하는 대신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다라고 여기고 치료에 집중했습니다. 3개월의 회복 기간에도 수행을 놓치지 않았고, 다시 수행과 봉사하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소임 또한 수행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저에게 소임은 수행과 둘이 아닙니다. 매일 정진하면서 나를 돌이키는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소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소임 하면서 제 한계와 마주할 때면 자책하는 업식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눈치를 덜 보니 사람 만나는 일도 편안해졌습니다. 2023년 교육연수팀 도반님들과 함께 소임을 하며 만났던 도반들은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지지하고 격려했습니다. 소임과 수행이 맞물려 정토회 활동과 제 일을 구분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했습니다. 한때 소임을 그만두라라고 압박했던 남편도 이제는 저를 도와 시간을 내어 아이들을 돌봅니다. 남편은 정토회 일을 하는 저를 여전히 못마땅해하지만, 필요한 순간이면 기꺼이 도와줍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며 편안해진 제 모습에 여동생과 친구, 지인 네 명이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육아로 마음고생하는 부모들이 이 법을 만나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주어진 소임을 기꺼이 하고자 합니다. 또한 저의 전공인 건축을 살려 법륜스님이 부탄에서 추진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서도 일하고 싶습니다. 강승연 님의 괴롭던 마음이 풀리며 펑펑 쏟는 눈물은 마치 꼬여 있던 호스가 풀리며 세차게 물줄기를 뽑아내듯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5월 신록들이 반짝반짝 빛나듯 강승연 님의 행복한 웃음이, 이 땅의 부모와 아이들에게도 퍼지기를 희망합니다. 글길현숙 편집박선희 각주7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제주지회 2024.05.29. 1,407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5월, 다함께 따뜻한 날_ 애광원 민들레집 나들이

설렘 맑고 푸른 5월, 순천만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오랜만에 오프라인에서 만난 봉사자들 얼굴에는 반갑고 설레는 표정이 가득했다. 오늘 일정을 안내받으며 하루 짝지가 될 애광원 식구의 이름과 특징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드디어 순천만 습지에 도착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에 기온은 이미 초여름이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조별 여는 나누기를 여유 있게 했다. 많은 봉사자가 중증장애인과 함께하는 건 처음이라 긴장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오늘 하루 잘 쓰이길 기대하는 마음과 설렘을 서로 나누었다. 반가움 나누기를 마치고 오늘 하루를 위해 국민체조로 간단한 몸풀기도 하고, 조별 사진도 찍으며 애광원 식구들과 스님을 기다렸다. 오늘 봉사를 위해 멀리 서울에서 온 봉사자도 있어 다 같이 박수로 환영했다. 애광원 식구 맞이 예행연습을 하는데 저 멀리 밀짚모자를 쓴 스님이 보였다. 다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오늘 스님을 처음 보는 봉사자도 있었다. 오랜만에 오프라인으로 스님을 보니 더욱 반가운 마음이었다. 따스함 드디어 애광원 가족들이 탄 버스가 도착했다. 봉사자들은 연습한 대로 버스 문 양쪽으로 서서 자신의 짝지를 반갑게 맞이했다. 스님도 버스 문 앞에서 애광원 가족들이 내릴 때마다 다정하게 인사하고 손을 잡아주었다. 마지막 휠체어까지 다 내리고 입구로 이동하여 스님과 애광원 이사님의 인사 말씀을 들었다. 오늘 봉사를 통해 오히려 내가 건강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복인지 알게 될 거예요. 오늘 하루가 애광원 식구들에게는 천국 같은 날이 될 겁니다. 먼저 애광원 식구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조별로 입구를 통과해 잘 정돈된 정원을 지나고, 푸른 갈대숲으로 걸어갔다. 짝지의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는 봉사자, 햇살이 강해 미리 준비해 온 양산으로 햇살을 가려주는 봉사자, 휠체어를 탄 원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이리저리 살피며 이동하는 봉사자. 아직은 좀 서툴지만, 다정한 말과 손길에서는 따스함이 느껴졌다. 시원함 애광원 선생님들과 함께 걸으며 짝지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받았다. 선생님들도 이런 나들이가 정말 오래간만이라며 웃어 보였다. 스님도 중간중간 애광원 식구들에게 눈을 맞추며 말을 건넸다. 햇살은 강했지만, 사이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날려주었고 푸른 갈대숲을 보니 마음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애광원 식구들도 좋아하는 걸까? 대부분 의사 표현이 잘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느끼고 있을 거라 믿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중간중간 스텝 봉사자들의 안내판에 따라 ‘덜컹 주의’가 나오면 휠체어 조는 조심해서 그 구간을 지났고, ‘화장실’이 나오면 화장실도 들리다 보니 순천만 습지를 한 바퀴 다 돈 셈이다. 곧바로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식당에서는 미리 정해둔 순서에 따라 교대로 짝지의 식사를 담당했다. 선생님들의 안내를 듣고 짝지의 특성에 맞춰 반찬을 잘게 자르고 밥을 잘 넘길 수 있도록 국에 밥을 말기도 하며 정성스레 식사를 도왔다. 짝지가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아 걱정하는 봉사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점심 식사를 잘 마쳤다. 애틋함 점심 식사 후 다시 버스에 올라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이동했다. 먼저 도착한 봉사자들은 애광원 버스에서 짝지가 내리면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달려나갔다. 아침보다 한결 더 반갑고 애틋함으로 짝지를 맞았고, 애광원 식구들도 봉사자들을 바라보는 표정이 한결 편해 보였다. 순천만 국가정원에서는 걷기 힘들어진 애광원 식구들을 위해 추가로 휠체어를 대여하고 다시 조별로 나들이를 시작했다. 국가정원에 들어서서 스님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바로 옆 장미화원으로 이동했다. 형형색색의 장미가 만개한 장미화원에서 스님은 인기스타였다. 예쁜 장미를 배경으로 너도나도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수시로 스님을 불러댔다. 스님은 웃으며 일일이 애광원 식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는 스님을 보고 손을 내미는 원생에게는 손도 잡아주고, 오전 내내 잠만 자고 일어난 원생에게도 인사를 했다. 즐거움 장미화원에서 사진찍기를 마치고 근처 잔디밭에서 잠깐 휴식했다. 나무 그늘에 준비해 온 돗자리를 펴고, 휠체어를 타고 있던 원생들도 돗자리로 내려와 편하게 눕거나 앉아서 쉬었다. 봉사자들도 짝지와 같이 시원한 간식을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화려한 영상이 펼쳐지는 스페이스 브릿지를 건너 동물원으로 이동했다. 동물원에는 홍학, 알파카, 앵무새, 사막여우 등 여러 동물이 있었고, 애광원 식구뿐만 아니라 봉사자들도 아이처럼 즐겁게 동물을 구경했다. 감사 동물원 구경을 마치고 그늘 벤치로 이동하여 오락 시간을 가졌다. 애광원 식구의 노래를 들으며 비록 가사 전달은 잘되지 않았지만, 다 같이 한마음으로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스님은 애광원 선생님들에게 책을 선물했고, 애광원 식구들도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빵을 선물로 주었다. 스님과 애광원 이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와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게 태어나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고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나들이 다음 날이 스승의 날이라 스님과 이사님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꽃다발을 전달하고 다 같이 ‘스승의 은혜’를 불렀다. 한 원생은 스님 옆으로 다가가 노래가 끝날 때까지 스님과 손을 잡고 머리를 기댔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사랑으로’ 노래를 부르며 오락 시간을 마쳤다. 아쉬움 이제 국가 정원을 나와 버스를 타고 저녁 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때와 마찬가지로 교대로 짝지의 식사를 담당했고, 봉사자들은 좀 더 능숙한 손길로 짝지의 식사를 도왔다. 그래서인지 다들 점심 때 보다 더 잘 먹는 것 같아 흐뭇했다. 저녁 식사 후 짝지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버스 탑승을 도왔다. 휠체어를 탄 짝지들이 많아 시간이 꽤 걸렸지만, 다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버스에 타기 전까지 옆에 꼭 붙어있었다. 보람 떠나는 버스를 향해 아쉬운 마음을 담아 손 인사를 하고, 조별로 모여 마지막 마음 나누기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했다. “보람찬 하루였고, 말로 표현은 못 해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쁘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맑은 모습을 보니 같이 행복해졌습니다.” “사업을 하다 보니 욕심을 내었는데, 오늘 봉사를 통해 욕심 녹아졌습니다. 건강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날씨도 좋고 순천만과 국가정원을 둘러보며 나들이하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습니다.” “종일 함께 한 짝지가 내게 어떤 반응도 말도 하지 않았지만, 헤어질 때 아쉬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하루 휴가 내고 참가했는데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다음에 또 봉사하고 싶습니다.” 글이보경 사진김해지회 회원 편집김난희

복지 2024.05.31. 82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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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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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